케빈 놀란과 니키 버트, 뉴캐슬에서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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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케빈 놀란과 니키 버트가 뉴캐슬이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던 시기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길래 소개합니다. (아무래도 최근 토튼햄 상황이랑 많이 오버랩되는 모양...)
◆ 뉴캐슬이 강등당하던 시기
니키 버트: 나랑 샘 알라다이스 감독이랑 친하긴 한데, 그의 축구 스타일은 나랑 맞지 않았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거든. 하지만 100% 확실한건, 샘이 계속 감독직을 유지했으면 뉴캐슬은 강등당하지 않았을거란 거야. 토튼햄도 토마스 프랭크 감독을 계속 믿었으면 지금의 위기는 겪지 않았을거야.
시즌을 8경기 남기고 앨런 시어러가 감독으로 부임했을때 난 기대를 많이 했어. 원래 그런 사람이 오면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 팬들 모두가 확 불붙게 되잖아? 그의 첫 경기였던 첼시전 경기장 분위기는 진짜 어마어마했어. 그런데도 우린 강등을 당했지. 시즌은 이미 꼬일대로 꼬여있었거든.
나는 사실 감독의 탓보단 선수들이 이름값에 비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더 컸다고 생각해. 거기에 일부 선수들은 시어러를 100% 따르지 않았어.
케빈 놀란: 내 관점은 이래. 시어러는 부임하자마자 모든 선수들에게 "자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이제부터 백지 상태로 새롭게 시작하자."고 했어야 했어. 대신 그는 익숙한 선수들(마이클 오웬 등)에 과도하게 의존했어.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결정은 아니야. 하지만 그러려면 결과를 똑바로 냈어야지.
난 그때 시어러에게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직접 조언하기도 했어. 지금 선발로 내는 베테랑들보다 컨디션 좋고, 의욕 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지. 그는 자신이 팀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를 비롯해 더프, 비두카 같은 선수들은 불만에 차 있었어.
시어러의 선수 관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 난 그를 여전히 엄청 존중해. 사실 그는 감독직을 할게 아니라 축구화를 다시 신고 직접 뛰었어야 했어. 훈련장에서 같이 뛰어보면 정말 무시무시했거든.
니키 버트: 내가 보는 그 시기 가장 큰 문제점은 시어러와 함께 온 이안 도위 코치였어. 자, 시즌 말미인데 강등위기를 겪고 있다? 그럼 팀의 사기를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해. 시즌 내내 얻어터진 선수들을 단합시키고, 다시 축구에 재미를 느끼게 해야지. 회식을 하든지 단합대회를 하든지 단기 전지훈련을 가든지 뭐 그런거 있잖아.
그대신 도위는 우리에게 체력훈련 스케줄을 짜줬어. 세상 어떤 팀도 4월에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릴 순 없어. 그런건 프리시즌에 하는거지. 특히 난 34~35세였다보니 훈련을 못 따라가겠더라고, 비두카 같은 친구도 아주 죽을라 그랬어. 모든 체력과 에너지를 경기장에 쏟아야 할 판에 훈련장에서 그러고 있었으니 강등당했지.
애초에 도위가 시어러에게 부족한 감독경험을 채우기 위해 데려온 코치였다보니까, 도위가 그렇게 훈련한다고 했을때 시어러도 따를 수 밖에 없었어. 게다가 감독이라면 자기 코치를 믿어야하잖아? 시어러는 도위에게 훈련 스케줄을 맡기고 다른 업무들에 집중했어.
물론 우리가 도위 때문에 강등당했다곤 할 수 없어. 강등은 시즌 내내 이어진 문제가 누적된 복합적 결니까. 무엇보다 선수들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한게 문제지.

◆ 챔피언십의 삶을 시작하며
니키 버트: 강등되고 나서 난 사실 떠나려 했어. 무엇보다 내 자신에 실망했었고, 이 구단이라면 정말 지긋지긋했지. 근데 강등이 되자 구단이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을 해고하는 모습을 본 거야. 내 생애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어. 늘 마주치고 인사하던 사람들이 어느순간 생계를 위협받게 되는 모습은 정말 큰 충격이었지.
그래서 1년 더 구단에 남기로 했어. 주전으로 뛰지 못하더라도 구단이 승격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
케빈 놀란: 강등 후 프리시즌 때 레이튼 오리엔트에게 6-1로 진 경기 기억나? 내가 진짜 락커룸을 뒤집어 엎었거든. 이렇게 패배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아주 지랄을 했지.
그리고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선수단 회의를 소집해서 얘기했어. "떠나고 싶은 놈은 손 들어" - 몇몇 선수들이 손을 들었지. 누가 손 들었는지 밝히지는 않겠지만 결국 손 든 사람들은 다 나갔으니 대충 짐작은 될꺼야.
한 가지 확실한건 그 중에 데미언 더프는 없었어. 결국 나중에 풀럼으로 이적하긴 했지만 그의 태도는 정말 최고였어. 정말 아무 생각 없는 로봇같은 친구였는데 말이야. 그저 경기장 들어와서 상대를 찢어발긴 후 샤워하고 갔지.
팀이 강등당하니까 볼튼에서 돌아오지 않겠냐고 전화도 받았었어. 하지만 여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임무가 있다며 거절했지. 나는 뉴캐슬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거든.
◆ 토튼햄과의 비교
니키 버트: 케빈, 그 때 강등당하던 우리팀이 지금의 토튼햄 선수들과 비교해 더 낫다고 생각해? 난 우리가 포지션별 맨투맨으로 비교하면 우리가 더 낫다고 보는데.
케빈 놀란: 응 나도. 그래서 토튼햄이 "강등당하기엔 너무 빅 클럽"이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아.
◆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승격하며
니키 버트: 난 운 좋게도 커리어 내내 꽤 많은 트로피를 얻었어. 하지만 그 유명한 맨유의 '트레블' 시즌을 제외하면, 내가 딴 그 어떤 트로피도 뉴캐슬의 챔피언십 트로피에 비할 수 없어. 한 구단이 강등되었다가 다시 승격하는 엄청난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것은 내게 대단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난 승격된 팀의 일원으로 멋지게 은퇴할 수 있었어.

◆ 앤디 캐롤의 리버풀 이적 비화
니키 버트: 케빈이 나보다 앤디와 훨씬 가까워서 할 말이 많을텐데, 우선 내가 보기에 캐롤은 고향팀 뉴캐슬에서 마음껏 재능을 펼치고 있었어. 하지만 리버풀이 큰 돈을 싸들고 올 때 그를 거절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지.
케빈 놀란: 앤디는 가고 싶지 않아했어. 하지만 구단이 3,500만 파운드란 거금에 이적에 합의한 판에 그 어린 선수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하나 뿐이었어.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앤디는 우리집에 있었어. 전화기가 하루 종일 불나고 있었지. "무슨 무슨 팀이 얼마를 불렀다더라"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어.
나와 앤디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꽤 괜찮게 호흡을 주고받던 차였어. 그래서인지 헤어짐은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지. 리버풀로 가는 헬기를 타러 우리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앤디는 가고 싶지 않아했어. 리버풀 이적이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찬스라는걸 인정하면서도, 그는 진심으로 뉴캐슬의 레전드가 되고 싶어했거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면서, 3,500만 파운드 - 역대 가장 비싼 영국 선수 - 라는 중압감에 짓눌린 앤디는 결국 뉴캐슬때처럼 플레이하지 못했어. 리버풀엔 어려운 시기에 그를 지탱해줄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거지.
니키 버트: 평생을 응원했던 고향팀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뛴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거야.

◆ 니키 버트의 '맨유 스파이' 루머
니키 버트: 난 뉴캐슬에서의 시간을 사랑했어. 훌륭한 도시였고 친절한 사람들도 많았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그곳에서의 삶 자체는 무척이나 좋았어.
하지만 팬들과의 관계가 틀어진건 특정 언론의 빌어먹을 거짓말 때문이었지. 2005년 4월, 우린 카디프에서 열린 FA컵 준결승전에서 맨유를 만나. 하지만 우리 모두는 경기를 망쳤지. 나부터 시작해서 말이야... 결국 4-1로 졌어. 난 정말 열받았었어. 맨유 선수들이 나와 유소년 시절을 함께 겪은 형제같은 사람들이라서 더더욱 이기고 싶었거든.
그래서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 그 누구와도 악수하지 않았지. 터치라인을 지나갈 때 퍼거슨 감독님이 찾아와 어께 감싸며 "괜찮아 임마, 또 보자"라고 위로해줬어.
나는 팀과 함께 뉴캐슬행 비행기로 복귀한 다음, 다시 차를 몰고 맨체스터에 있는 병원으로 갔어. 당시 내 전처가 둘째아이를 출산할 예정이었거든. 구단과 모두 조율된 일정이었어.
문제는 이 망할 언론이 퍼거슨 감독님과 내가 어께동무한 사진을 대문짝만한게 실으며 내가 맨유 선수단과 함께 맨체스터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고 거짓 보도를 한 거야.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였지. FA컵 패배로 분노했던 팬들의 비난이 내게 쏟아졌고 난 그 기자에게 머리 끝까지 화가 났어. 그래서 다음 번 그를 만났을 때 그에게 얘기했어 "한 번만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거짓말하면 내 모든걸 걸고 당신을 조져버리겠다"고.
내게 실수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를 해명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땐 SNS도 없던 시절이었거든. 구단의 대처도 아쉬워, 당시 감독이었던 수네스는 기자회견 같은걸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았어.
https://www.youtube.com/watch?v=Fbt7bj_thwA&t=90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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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프로미스나인님의 댓글
프로미스나인 작성일그 시절이 떠오르는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갓랭이님의 댓글
갓랭이 작성일저 선수단 회의에서 떠나려고 했던 선수들은 베예 마르틴스 바쏭 카사파 제레미? 정도 되겠네요
룰랄님의 댓글의 댓글
룰랄 작성일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BetHesTorm님의 댓글
BetHesTorm 작성일추억에 잠기게 되네여 ㅎㅎ 잘 읽었습니다
당끼님의 댓글
당끼 작성일저때 더프가 자책골 넣으려고 넣은 것도 아니고 눈물까지 보였는데 강등 원흉으로 아직 비판하는 사람들 보면 좀 씁쓸하네요. 기대보다 못 했을 순 있어도 항상 프로페셔널 했었던 기억이라
그거슨진ㄹ1님의 댓글
그거슨진ㄹ1 작성일한 성질 하던 선수들이네요 ㅎㅎ
디뮤어님의 댓글
디뮤어 작성일앤디 캐롤도 뭔가 안타깝네요
KDyer님의 댓글
KDyer 작성일버트가 생긴거랑 달리 투쟁심 및 성깔이 대단했던 선수죠 ㅋㅋ 삽질을 할 지언정 그 플레의 진정성에 의심을 한 적은 없었는데 저런 루머에 시달렸었군요...
StJamesPark님의 댓글
StJamesPark 작성일맨유 언플은 여기서도 ..
Woltemade님의 댓글
Woltemade 작성일
이런 사건도 있었군요 ㅎㅎ
예전 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재밌네요
루페니님의 댓글
루페니 작성일캐롤이 안떠나고 남았다면 정말 윈윈이었을텐데 그러기 쉽지 않던 시절 ㅠㅠ
툰코무무님의 댓글
툰코무무 작성일"사실 그는 감독직을 할게 아니라 축구화를 다시 신고 직접 뛰었어야 했어. 훈련장에서 같이 뛰어보면 정말 무시무시했거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홍래님의 댓글
홍래 작성일캐롤건은 본인이 리버풀가고싶어서 이뤄진 이적이 아니었네요. 어떻게 보면 캐롤도 피해자고 당시 런삭보다 더 욕했는데 미안하네요.
다웬님의 댓글
다웬 작성일
당시 캐롤에게 엄청 실망하고 화를 냈던게 생각나네요.
그 만큼 기대를 많이 했던 선수라 그랬던 것이지만.
이렇게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이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시 씁슬하네요
맥파이23님의 댓글
맥파이23 작성일당시 감독이었던 수네스는 기자회견 같은걸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았어 당시 감독이었던 수네스는 기자회견 같은걸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았어 당시 감독이었던 수네스는 기자회견 같은걸 통해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았어...ㅠㅠㅋㅋㅋㅋ
맥파이23님의 댓글의 댓글
맥파이23 작성일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링크 타고 들어가 보니 댓글창이 올드팬 반상회 느낌이네요ㅎ
Lewis67Miley님의 댓글
Lewis67Miley 작성일캐롤은 최소 몇시즌은 더 팀에 남겼어야 했음
뉴캐슬구단주님의 댓글
뉴캐슬구단주 작성일4월에 체력훈련을 했었군요... 요즘 세상 같아서는 말도 안되죠...
앨런시어러님의 댓글
앨런시어러 작성일재밌네요. 이삭사태때 캐롤이 떠나고 싶지않았다고 인터뷰 한거도 맞는거같기도 하네요.
레종레스비님의 댓글
레종레스비 작성일
캐롤의 경우 리버풀 팬이
"캐롤은 가기싫은데 뉴캐슬이 돈때문에 보냈다"
라고 하는 말 다 헛소리로 치부하고
캐롤이 돈때문에 간걸로 알고있었는데
사실은 구단이 가기 싫어하는데도 보낸거였군요
